특허란 베끼라고 있는 것? 이젠 침해땐 `패가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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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2.12. 오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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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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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액 3배 징벌적 손해배상
국회 통과돼 내년 6월 시행
영업비밀 침해보상 5천→5억

솜방망이 처벌·인식 부족 탓
만연한 특허 모방 급브레이크


# A중소기업은 여러 물질을 배합해 개발한 신소재로 절전기를 만들어 판매했다. 신소재 원료 배합은 특허 등록과 함께 영업비밀로 관리했다. 그런데 A사에서 일하던 직원을 스카우트한 B사가 이직 직원이 유출한 영업비밀을 가지고 A사의 신소재와 유사한 물질을 개발했다. 이후 이 물질을 A사의 독점거래 업체에 납품했다. 납품 소식을 접한 A사는 2억90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며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소했고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법원은 고작 2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 C사는 TV 리모컨용 반도체칩을 개발해 첫해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곧 경쟁업체가 비슷한 특허를 등록하고 모방 제품을 내놨다. C사는 이 회사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했다. C사는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갖고 있던 특허를 철저하게 등록하지 못했던 점을 발견했다"며 "경쟁업체가 이 점을 파고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2012년 삼성과 애플 간 특허분쟁 이후 중소·벤처기업을 비롯한 많은 회사가 특허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하지만 이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에서는 여전히 특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심지어 "특허란 베끼기 위해 존재하는것"이라며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특허 침해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주장을 펼치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특허를 침해해도 피해금액의 수십 분의 1 정도에 불과한 배상액만 부과하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도 특허 모방을 조장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됐다.

하지만 지난 7일 특허·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이 포함된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특허 베끼기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내년 6월부터 적용되는 개정안은 특허 베끼기나 영업비밀을 침해할 때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보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영업비밀을 인정하는 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처벌 수위를 높였다. 영업비밀 침해 상한액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됐고 영업비밀 침해행위 예비 음모죄 벌금도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높아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에서 지식재산권(IP)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발생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준성 준성특허법률사무소 대표는 "징벌적 보상 제도 도입으로 중소·벤처기업들의 특허 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한편 동시에 특허를 침해하면 큰 배상액을 물어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 상태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특허 침해 소송 판결을 살펴보면 손해배상액 규모가 상당히 작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A사는 영업비밀 침해로 거래처를 뺏겼지만 피해액의 10%도 받아내지 못했다. '통계로 본 특허 침해 손해배상 소송 20년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허 침해 소송에서 발생한 손해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으로 미국의 65억7000만원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준성 대표는 "국내 특허 침해 사건을 살펴보면 손해배상액이 낮아 소송에서 져도 법원에서 판결한 금액만 물어주면 되기 때문에 이득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소송에 걸리는 1~2년 시간과 변호사 비용까지 고려하면 소송에서 이긴 기업도 경제적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무팀이 있는 대기업처럼 전문 변호인이나 변리사를 고용할 수 없는 중소·벤처기업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허처럼 공개된 IP가 아닌 기업 내부 인원만 공유하는 영업비밀 침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허에 대한 인식이 낮다 보니 중소·벤처기업들도 기술을 개발한 뒤 특허를 신청할 때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다. 특허 출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기술의 권리를 인정하는 '청구 범위'가 쪼그라들고 이는 결국 질 낮은 특허를 양산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장벽이 높지 않은 특허를 우회하기 위해 조금만 특허 내용을 바꿔 새로운 특허로 등록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박성준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중소·벤처기업 일부는 특허등록증을 단순히 홍보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질 낮은 특허를 갖고 있으면 이를 피하거나 무효화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또다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박 국장은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의 기술 침해가 빈번히 발생한다"며 "이처럼 특허 가치와 인식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기술 개발과 창업 의지가 꺾이는 악순환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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